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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우리의 삶을 비추는 작은 빛들
디스크립션
최은영 작가의 글을 읽을 때마다 마음 깊은 곳이 울린다. 그녀의 작품은 잔잔하면서도 묵직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잊고 있던 감정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든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최은영의 가장 최신작으로, 작가가 오랜 시간 탐구해온 여성 서사, 인간관계, 가족 이야기들을 더욱 깊고 확장된 시선으로 풀어낸 단편집이다.
이 책에 수록된 일곱 편의 단편은 마치 긴 편지처럼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때로는 후회와 미안함으로, 때로는 따뜻한 위로와 이해로 다가온다. 작가는 여성들이 살아가며 겪는 크고 작은 아픔과 성장, 관계 속에서의 갈등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이 리뷰에서는 책의 줄거리, 인상 깊은 구절, 느낀 점, 그리고 추천 이유를 중심으로 최은영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깊이 있게 탐구해보겠다.
1. 책 줄거리 – 우리가 남기는 흔적들
1)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책의 첫 번째 이야기이자 표제작인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대학교 3학년이었던 ‘희원’은 수업에서 만난 한 시간 강사에게 깊은 동경을 품는다. 그녀는 대학원에 가기 위해 편입을 했고, 문학을 공부하며 강의실에서 그 강사를 만난다. 그녀는 희원의 눈에 단순한 시간 강사가 아니었다. 그녀의 강의는 신선했고, 그녀의 삶은 희원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닮아 있었다.
“그녀에 대한 공경과 호기심, 어려움이 섞인 마음을 감추려고 나는 그녀와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 (p.25)
희원은 그녀를 롤모델처럼 바라보며 자신도 그녀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는 희원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공부는 대학원 아닌 곳에서도 할 수 있는 거야.”
이 말은 희원을 당혹스럽게 한다. 자신이 꿈꾸는 길을 걸어온 그녀가, 정작 대학원에 가는 것을 말리는 듯한 뉘앙스로 들렸기 때문이다.
희원은 순간적으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그녀에게 차가운 말을 내뱉는다.
“여자 강사여서, 정교수가 아니라서?”
그녀에게 그 말이 상처가 될 것을 알면서도, 희원은 그녀에게서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했다. 하지만 결국, 그 말을 끝으로 둘의 관계는 멀어진다.
세월이 흐른 후 희원은 문득 그때의 자신을 돌아본다. 자신이 찾고 싶었던 빛은 사라졌던 걸까? 아니면 여전히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는 걸까?
이 단편은 우리가 동경하던 사람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그리고 그 기억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변하는지를 조용히 되돌아보게 만든다.
2) 몫
〈몫〉에서는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희영과 정윤, 그리고 화자인 ‘해진’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희영은 사회 문제를 비판하고 싶어 했고, 정윤은 글쓰기가 가진 한계를 깨달아 결국 결혼을 선택했다. 해진은 글을 잘 쓰는 편은 아니었지만, 결국 기자가 되어 글을 계속 써 나간다.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 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p.52)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 희영은 글이 아닌 행동으로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느끼고, 정윤은 글쓰기를 포기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글이 가진 힘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3) 일 년
〈일 년〉은 직장 내 인간관계를 다루는 이야기다.
정직원 ‘지수’와 인턴 ‘다희’는 함께 카풀을 하면서 조금씩 가까워진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서로 진심을 드러내지 못한 채 어색하게 멀어진다.
“그녀는 다희에게 서운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서운하다는 감정에는 폭력적인 데가 있었으니까.”
사회 속에서 맺어지는 관계들은 종종 이처럼 불완전하다. 우정과 의무 사이에서, 서로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우리는 그렇게 흩어진다.
2. 인상 깊은 구절 – 잊히지 않는 문장들
“어쩌면 그때의 나는 막연하게나마 그녀를 따라가고 싶었던 것 같다. 나와 닮은 누군가가 등불을 들고 내 앞에서 걸어주고, 내가 발을 디딜 곳이 허공이 아니라는 사실만이라도 알려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p.44,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부끄러워도 돼요. 부끄러운 것 귀여워요.”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글쓰기로 자기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다시 글을 써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을 수 있다는 행복.” (p.75, 〈몫〉)
3. 느낀 점 – 왜 이 소설이 특별한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기억’과 ‘흔적’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때때로 어떤 순간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들은 아주 희미한 빛처럼 여전히 남아 있다.
- 희원이 동경했던 강사의 흔적
- 글을 쓰며 깨달았던 한계와 좌절
-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헤어진 관계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삶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남아 있다.
4. 추천 이유 – 왜 이 책을 읽어야 할까?
- ① 인간관계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싶다면
- ② 사회 문제와 여성 서사에 관심이 있다면
- ③ 조용하지만 강한 감동을 원한다면
결론 – 아주 희미한 빛이라도, 우리는 계속 살아간다
바라지 않아도, 그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희미한 빛이라도, 우리는 그 빛을 따라 살아갈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