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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꽃님 작가의 책을 읽을 때마다, 한동안은 다른 책이 잘 안 읽힌다. 문장 하나하나가 오래 남고, 그 여운을 지우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죽이고 싶은 아이』 역시 그랬다.
처음엔 제목이 너무 강해서 솔직히 꺼려졌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말은 너무 극단적이어서,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문장에 마음이 붙들렸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기에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그렇게 시작된 독서는, 예상보다 훨씬 조용했고, 예상보다 훨씬 고통스러웠고, 예상보다 훨씬 따뜻했다.
말하지 못한 마음들의 충돌
이야기의 중심엔 ‘하율’이라는 아이가 있다. 학교에선 괴롭힘을 당하고, 집에서도 누구 하나 제대로 돌봐주는 사람이 없다. 늘 혼자고, 늘 외면당한다. 그런 하율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이라는 궤도를 아슬아슬하게 벗어나 있다.
그리고 반대편엔 ‘성준’이 있다. 반듯하고, 공부 잘하고, 선생님들에게 신뢰받는 아이. 하지만 속은 전혀 다르다. 감정을 드러내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인정받아야만 존재의 가치를 느끼는 아이.
이 둘이 충돌하는 순간,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충돌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이건 두 마음이 “제발 좀 봐줘”라고 절규하는 과정이고, 말하지 못했던 것들이 결국 폭력이라는 방식으로 터져버리는 이야기다. 누가 더 나쁜 아이인지 따지는 건 의미 없다. 그보다는, 왜 그런 감정까지 몰렸는지를 보는 게 더 중요하다. 그리고 작가는 그걸 아주 집요하게, 그러나 조용하게 파고든다.
"그 애는 언제나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이 책에서 가장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던 문장은 이거다.
“그 애는 언제나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땐, 그냥 ‘혼자인 아이의 외로움’ 정도로만 느껴졌다. 그런데 페이지를 넘기고 또 넘길수록, 이 말이 가지고 있는 무게가 점점 커졌다.
그 애는 친구일 수도 있고, 부모일 수도 있고, 선생님일 수도 있다. 혹은 나일 수도 있다.
우리는 누군가가 곁에 있어도 ‘진짜로’ 보는 일이 얼마나 드문지 잊고 산다.
하율은 그런 무수한 ‘무시됨’과 ‘무관심’ 속에서 점점 사라진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아이.
그리고 결국, 폭력을 통해서라도 자신이 존재한다는 걸 증명하려 한다.
그게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세상에 ‘나 좀 봐줘’라는 말보다 절박한 게 있을까.
“죽이고 싶은” 감정 뒤에 숨은 절규
이 소설의 제목은 너무 거칠고 위험해 보인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제목이야말로 가장 조심스럽고, 가장 절박한 표현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는 종종 어떤 아이가 이상한 행동을 하면 그 아이만을 문제 삼는다.
하지만 이 소설은 말한다.
그 아이를 그렇게 만든 건 누구인가?
하율이든 성준이든, 이 아이들은 단지 감정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어른들이 너무 오래 외면해온 결과물일 뿐이다.
폭력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그걸 작가는 절대 소리치지 않고, 부드럽게, 그리고 끈질기게 알려준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어른으로서 부끄럽다’는 감정을 느꼈다.
그동안 너무 쉽게 판단했고, 너무 자주 흘려보냈다.
누군가가 내 앞에서 조용히 무너지는 걸 보면서도 “괜찮냐?”는 말조차 하지 않았던 기억들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 – 어른이 먼저 읽어야 할 청소년 소설
『죽이고 싶은 아이』는 청소년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되지만, 나는 어른이 먼저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 청소년을 가르치는 선생님들, 그리고 과거의 자신에게 여전히 상처받은 어른이라면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이 책은 ‘문제 학생’이라는 말 뒤에 가려진 진짜 이야기를 보여준다.
어떤 아이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보지 않고, 단지 결과만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작가의 저항 같다.
그래서 읽는 내내 불편하고, 아프고, 때로는 스스로를 미워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야말로 변화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마무리하며 – 그 마음을 바라볼 용기
책을 덮은 지 며칠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는 이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문득 길을 걷다가, 지하철에서, 뉴스 속 사건을 보면서, “그 아이도 외로웠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은 단지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어떤 마음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누군가를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말뿐 아니라 침묵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죽이고 싶은 아이』는 그런 걸 알려주는 책이다.
그래서 조용히 읽히지만, 조용히 잊히진 않는다.
어쩌면 이건 내가 지금까지 읽은 청소년 소설 중 가장 ‘어른스러운’ 책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이런 책이 더 많이, 더 오래, 사람들에게 읽히길 진심으로 바란다.